부모님과 함께한 배낭여행 3편 독일: 독일 열차 여행, 가족끼리 더 단단해졌던 시간
독일 일정은 우리 가족이 유럽 여행 중 가장 차분하게 호흡을 맞추게 된 시기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여정 동안 크고 작은 실수도 많았고 서로의 속도에 맞추느라 조금은 어수선했지만, 독일에서는 여행 자체가 한 박자 느려지며 가족끼리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게 되었다. 특히 열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시간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가족을 더 단단하게 묶어주는 순간들로 바뀌었다.
독일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뮌헨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해야 했다. 유럽 열차 이동이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께는 플랫폼 숫자와 열차 번호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걷기 힘들어하지 않도록 짐을 대신 들고 플랫폼을 이리저리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부모님이 더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파리에서 지하철 티켓을 잘못 끊고 난리였던 그때와 달리, 독일에서는 우리가 모두 조금은 여행자답게 성장해 있었다.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창밖으로 펼쳐지는 들판을 보며 부모님이 동시에 감탄하셨다. 스위스의 알프스가 장엄한 자연이라면, 독일의 풍경은 더 일상적이면서도 편안했다. 부모님은 그런 평온한 풍경을 특히 좋아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여행은 결국 화려한 관광지보다도, 이런 소소한 이동 시간에서 더 많은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열차 안에서 부모님은 몇 년 전 이야기부터 우리가 어릴 때 가족 여행을 갔던 기억까지 하나둘 꺼냈다. 그동안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깊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열차 흔들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앞으로 어떤 여행을 가보고 싶은지, 부모님께서 살아오면서 놓쳤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온 결정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새삼 느꼈다.
독일 여행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플랫폼 변경이었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발 5분 전에 플랫폼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 짧은 순간, 부모님께서 당황하실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작은 긴장감 속에서도 침착하게 따라오셨다. 이전에는 이런 변화가 오면 가족 모두가 우왕좌왕했을 텐데, 이제는 서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다. 아빠는 짐을 챙기고, 엄마는 우리가 빠뜨린 건 없는지 확인하고, 형제는 새로운 플랫폼 정보를 체크했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여행을 통해 가족이 함께 성장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독일의 도시들은 생각보다 훨씬 실용적이고 규칙적이었다. 베를린에서는 역사적 장소를 방문해 부모님께서 진지하게 설명을 들으시는 모습을 보며, 여행이 단순한 ‘즐김’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쌓고 세대를 연결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부모님은 전쟁과 분단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어릴 때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며, 독일의 변화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설명해주셨다. 나에게는 그저 교과서에서 본 이미지였지만, 부모님께는 청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실제 세계였다.
또한 독일 숙소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며 느낀 점이 있었다. 부모님은 여행을 오기 전, 체력적으로 자신 없어 하셨지만 오히려 여행이 진행될수록 더 활기차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유럽 도시를 걷고,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과정이 부모님께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 초반에 비해 훨씬 더 자주 웃었고, 가벼운 농담도 오가고,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바로 독일 일정이었다.
마지막에는 기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아빠가 조용히 사진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행 내내 묵묵히 다른 말 없이 사진만 찍으시던 아빠였는데, 그날은 사진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여행이 부모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되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엄마도 매번 가방이 무겁다고 하면서도, 독일 도시 곳곳에서 작은 기념품을 하나씩 챙기셨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도 그 물건들을 보며 자주 이야기를 꺼내셨다.
독일 열차 여행은 우리 가족이 서로를 다시 이해하게 만든 중요한 시간이었고, 여행이라는 것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관계를 쌓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부모님이 하루라도 더 젊으실 때 꼭 함께 여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저는 독일에서 더 강하게 느꼈다. 언젠가 또 부모님과 함께 유럽을 여행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그때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여행기가 누군가에게 부모님과의 여행을 시작할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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